DUNLOP TYRE STORY
세계최초의타이어던롭

최고를 향한 영원한 질주

완벽한 타이어를 향한 집념은 오늘도 던롭연구소의 많은 연구원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습니다.
꿈의 타이어, 인간을 위한 최고의 타이어를 향한 Dunlop의 질주는 영원할 것입니다.

타이어 발견 이야기

영국의 작은 도시 벨파스트, 어느 날 조니는 삼륜자전거를 타고 놀다가 떨어져 얼굴을 심하게 다쳤다. 당시의 모든 바퀴는 무쇠로 투박하게 만들어졌거나 나무바퀴에 무쇠를 씌운 것으로 작은 돌맹이에 부딪히기만 해도 마구 흔들렸다. 사랑하는 아들의 상처를 보며 안전한 타이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던롭이 제일 먼저 떠올린 것은 무쇠대신 고무입힌 타이어였다. 때마침 집에서 사용하는 고무호스가 눈에 띄자 나무바퀴의 무쇠를 벗겨내고 그것을 씌워보았다. 신통치 않았다. 덜덜거림은 조금 줄어들었으나 탄력이 없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조니가 마음놓고 삼륜자전거를 타고 놀 수 있는 안전한 바퀴가 없을까. 고민의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사랑하는 아들 조지가 쭈그러진 축구공을 들고와 팽팽하게 공기를 넣어달라고 조른다.

축구공을 안고 있는 아들의 모습에서 던롭은 기발한 착상을 얻는다. 삼륜자전거 고무바퀴에 공기를 넣어 탄력을 갖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른 것. 곧 실험에 착수했다. 축구공에 씌워진 단단한 가죽처럼 고무호스위에 두껍고 질긴 고무를 입혀보았다. 이것이 최초의 타이어. 때는 1888년 2월 28일. 물침대처럼 탄력도 그만이고 바퀴도 잘 구르고 안성맞춤이었다. 아들이 삼륜자전거를 타며 마냥 즐겁게 노는 모습을 행복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던롭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공기타이어의 혜택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골고루 누릴 수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서둘러 전체를 정리, '던롭공기타이어회사'를 설립하고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선풍적인 인기였다. TV는 물론 라디오도 없는 시대였는데도 유럽과 미국 전역에 온통 소문이 퍼졌다. 여기에다 금상첨화로 운도 더해졌다. 1895년을 전후해 자전거가 일대 붐을 이루었던 것. 매년 필요한 타이어 숫자만해도 1억여개에 달했다. 이는 던롭을 7년만에 미국재계의 거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도 행운은 계속 따랐다. 독일의 벤츠사와 미국의 포드사에 자동차용 공기타이어를 독점 납품하게 된것이다. 평범한 수의사가 일약 세계적인 대기업의 사장으로 변신하게 됐다. (왕연중:한국발명진흥회 특허관리지원팀장)

1888년 John Dunlop에 의하여 공기를 넣은 타이어가 최초 개발된 이래 타이어의 역사는 눈부신 발전의 역사로 이어지기 시작합니다. 우리와는 더욱 인연이 깊은 Dunlop타이어를 고종 황제의 어가(임금님이 타는 수레)를 대신해 국내에 선보인 최초의 자동차에도 장착되어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세기 접어들며 타이어의 개발은 던롭 중앙연구소가 발족되어 보다 과학적인 바탕위에 더욱 진보하게 됩니다.

최고를 향한 영원한 질주

21세기 최고의 Dunlop Tyre는 그 동안 고속 주행시 접지면에서 발생하는 타이어의 모든 문제들을 디지털 시뮬레이션으로 완전히 분석하여 현존하는 타이어 중 완벽에 가까운 타이어 모델을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인 미슐랭이 1895년 파리/보르도 랠리에서 선보인 공기 타이어 장착 자동차의 성공에 너도 나도 통고무 타이어를 버리고 공기 타이어를 찾았습니다. 이로서 선두주자 던롭의 영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공기 타이어의 확산은 아시아의 숲까지 바꿔 버렸습니다. 말레이시아가 세계최대의 천연고무 생산국가가 된것도 던롭이 세운 대규모 고무농장에 연유합니다. 1923년부터 개최된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던롭타이어 장착차는 통산 34승의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1947년에는 시속 634km의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20세기 후반 던롭연구소에서는 고속 주행 중 발견되는 Hydroplanning현상(우천시 수막현상으로 인해 핸들의의 조작이 어려워지는 현상)을 일찍이 발견. 연구하여 던롭시스템의 개발 등 고속주행시의 안정성에 많은 연구결과를 남겼습니다.